주제 : 백제, 고구려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대해 정리해 보세요.
신라의 귀족인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연합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 2명을 당나라에 남게 해 관직을 받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맺게 된 신라와 당나라와의 연합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밀약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648년, 신라인들은 중국의 의복을 취하며 그동안 써왔던 독자적인 연호 대신 중국의 연호와 달력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동북아시아는 당나라와 신라연합과 돌궐, 고구려, 백제, 왜 연합의 십자형태의 연합구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해동증자라는 칭호까지 얻었던 의자왕은 갑자기 황궁을 화려하게 꾸미고, 대규모 주연을 베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 성충은 옥중에서 용병에는 지리가 중요하니 육로는 침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수군은 기벌포에 닿지 못하게 하면 막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의자왕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다급해진 의자왕은 계백에게 5천 결사대를 주어 신라군을 막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황산벌에서 크게 패하였습니다. 이후 고구려도 무너졌고 한반도 곳곳에서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기 위한 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0만 명의 군사가 매소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고, 김유신의 아들 원술이 3만 명의 신라군을 이끌고 먼저 당나라의 기마 부대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는 3만 필의 말을 빼앗았고 신라군은 백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벌어진 22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공부하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제와 고구려가 부흥운동을 벌였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교사평 : 지원이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와 나당 연합을 맺게 된 내용부터 차례대로 정리하여 이 글만 읽어도 삼국통일의 과정에 대해 시간적 흐름의 순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한 것 같아 칭찬해 주고 싶어.^^ 정리한 글의 내용을 보니 고구려의 멸망보다 백제의 멸망 부분이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았나 보구나! 많은 부분을 공부하며 느낀 바가 있었을 텐데, 이에 관한 지원이의 생각이 드러나 있지 않아 그 부분이 좀 아쉽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