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조선시대 '실학'에 대해 서술하세요.
내용: 18세기 전반, 세계에서는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서세동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큰 전쟁에 의해 국토가 황폐화되던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성리학은 백성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백성들이 잘 살고 나라가 튼튼해지는 방법을 연구하는 실학이 생겨나게 되었다.
실학은 농업 개혁을 부르짖는 중농주의와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는 중상주의로 나뉜다. 중농주의 학파 중에서는 <반계수록>에서 신분의 차이에 따라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 유형원, <성호사설>에서 토지 소유의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이익,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많은 책을 쓴 정약용이 있다. 또 상공업을 중시한 중상주의 학파 중에서는 <우서>를 쓴 유수원, <담언일기>를 쓴 홍대용,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 <북학의> 박제가가 있다.
실학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인 정약용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정악용은 생원이 된 후, 배다리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마과회통'이라는 의학서에 천연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담아 편찬, 보급하였다. 이 책은 천연두에 무방비 상태인 백성들을 살릴 수 있었고 이것이 임금의 귀에 들어가 마과회통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유배를 간 후 다산 초당에서 수많은 저서활동을 했고 1818년 유배가 풀리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는 실학이 발전함으로써 조선이 망하지 않고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죽은 조상들을 모시는 데 많은 힘을 쏟지 않고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실질적으로 잘 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연구하게 만든 것이 실학이기 때문이다.
평가: 실학을 중농주의와 중상주의로 나눠서 자세하게 설명해준 점 좋았어! 지운이도 점점 글의 구성 능력이 좋아지는구나! 다만, 갑자기 실학자의 한 명인 정약용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로 유배를 갔고 언제 풀려났는지와 같은 TMI를 쓰는 건ㅎㅎ 조금 뜬금없는 전개이지 않을까? 실학자인 정약용이 어떤 저술이나 발명을 해서 백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줬는지까진 써줘도 좋아. 이번 글의 주제는 실학에 대해 써보는 것이니깐. 하지만 '정약용'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정약용의 '삶'을 써주는 건 TMI일 수 있지! 이렇게 주제에 맞게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지? 지운이가 똑똑해서 아는 게 정말 많아 다 쓰고 싶겠지만, 내가 어떤 것을 써야하고, 어떤 것을 쓰지 말아야하는지 명확하게 먼저 구분하는 것도 글쓰기 능력 중 하나야.
또 지금 지운이의 글에서 정약용에 대한 부분이 많은데,(물론 대표적인 실학자라 정약용에 대해서 길게 써준 건 좋지만) 글 앞에서 지운이가 소개한 다른 실학자들도 좀 더 조사해서 균형있게 글을 써줬다면 훨씬 더 유익하고 풍부한 글이 됐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