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4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어보어책·국채보상운동·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서울=뉴시스】 신동립 기자 2017-10-31

 

1.png

【서울=뉴시스】 조선왕실 어보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24~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가 최종심사를 통과한 이들 기록유산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유네스코에 권고했고,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수용, 등재를 결정했다.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은 금·은·옥에 아름다운 명칭을 새긴 어보, 오색 비단에 책임을 다할 것을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글을 쓴 교명, 옥이나 대나무에 책봉하거나 아름다운 명칭을 수여하는 글을 새긴 옥책과 죽책, 금동판에 책봉하는 내용을 새긴 금책 등이다.이러한 책보(冊寶)는 조선조 건국 초부터 근대까지 계속됐다. 1392~1966년 570여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책보를 제작해 봉헌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국왕의 자리를 이을 아들이나 손자 또는 왕실의 승계자는 국본(國本)으로서 왕위에 오르기 전에 왕세자나 왕세손에 책봉되는 전례(典禮)를 거쳐야 했다. 어보와 어책은 1차적으로 이와 같은 봉작(封爵) 전례의 예물로 제작했다. 통치자로서 알아야할 덕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구가 들어있다. 왕세자나 왕세손에 책봉되면 징표로 국왕에게서 옥인(玉印), 죽책(竹冊), 교명(敎命)을 받음으로써 왕권 계승자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이들이 성혼한 경우에는 빈(嬪)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왕세자나 왕세손이 국왕에 즉위하면 즉위식에서 왕비도 금보(金寶), 옥책(玉冊), 교명을 받았다. 왕과 왕비가 죽은 뒤 묘호와 시호가 정해지면 시보(諡寶)와 시책(諡冊)을 받았다. 왕과 왕비가 일생에 걸쳐 받은 책보는 신주와 함께 종묘에 봉안됐다. 살아서는 왕조의 영속성을 상징하고 죽어서도 죽은 자의 권위를 보장하는 신물이었다.


책보에 쓰인 보문과 문구의 내용, 작자, 문장의 형식, 글씨체, 재료와 장식물 등은 매우 다양하다.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책보만이 지닐 수 있는 세계기록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왕조의 영원한 지속성을 상징하는 어보와 그것을 주석한 어책은 현재의 왕에게는 정통성, 사후에는 권위를 보장하는 신성성을 부여해 성물(聖物)로 숭배됐다. 문화재청은 “책보는 왕실의 정치적 안정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인류문화사에서 매우 독특한 문화양상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기록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국가가 진 빚을 국민이 갚기 위해 1907~1910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2.png

【서울=뉴시스】 조선왕실 어책(죽책)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열강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서 식민지적 팽창을 하면서 대부분의 피식민지국가에게 엄청난 규모의 빚을 지우고 이를 빌미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동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외채 탓에 망국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이미 베트남, 인도, 폴란드, 이집트, 오키나와 등이 외채로 나라를 잃은 역사적 사실을 주목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은 외채로 인한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남성은 술과 담배를 끊고, 여성은 반지와 비녀를 내놓았다. 기생과 걸인, 심지어 도적까지도 의연금을 내는 등 국민의 약 25%가 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전국민적 기부운동을 통해 국가가 진 외채를 갚음으로써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다.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은 영국 언론인이 한국에서 발행하는 영어신문에 의해 서방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해외 유학생과 이주민이 외국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통해서도 해외로 알려졌다.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도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을 알렸는데, 외채로 시달리는 다른 피식민지국에 큰 자극이 됐다.이후 중국(1909), 맥시코(1938), 베트남(1945)등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여러 국가에서도 한국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문화재청은 “한국의 국채보상운동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다. 가장 긴 기간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적 기부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역사적 기록물이 유일하게 온전히 보존돼 있다는 사실도 역사적 가치를 높인다”고 설명했다.‘조선통신사 기록물’은 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이다.

 

3.png

【서울=뉴시스】 국채보상운동 성책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 사절단이다. 한양에서 쓰시마까지 행렬하면서 일본과 조선은 ‘통신(通信)’이라는 말 그대로 신의를 나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하는 것이 조선통신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 조선은 황폐해졌다.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명대사 유정과 교섭, 조선과 국교를 회복했다. 이후 도쿠가와 바쿠후(幕府)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쇼군(將軍) 일대의 의식’으로 중시했다.1607~1811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차례 찾았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의 후시미(伏見), 12회 방문은 쓰시마까지 였으나 그 외에는 모두 에도(江戸)까지 왕복했다. 4~6회에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부사·종사관 삼사(三使) 이하 화원·의원·역관·악사 등 4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였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해 일본의 수도인 에도까지 반년 이상이 걸리는 왕복 3000㎞의 여행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은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 민중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현지 각 계층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15년 7~8월 국민 공모로 기록물들을 접수,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 지난해 5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냈다.이와 별도로 민간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과 ‘조선통신사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직접 제출했다. 일본군 위안부기록물은 당사자간 대화를 위해 등재가 연기됐다. 조선통신사기록물은 등재에 성공,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3건이 추가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은 2년에 1회, 국가별로 2건까지 할 수 있다. 국제공동등재는 건수 제한 없이 신청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세계기록유산 13건을 보유했다. 훈민정음(1997), 조선왕조실록(1997), 직지심체요절(2001), 승정원일기(2001), 조선왕조의궤(2007),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2007), 동의보감(2009), 일성록(2011), 5·18 관련 기록물(2011), 난중일기(2013), 새마을운동기록물(2013), 유교책판(2015),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15)다.

 

4.png

【서울=뉴시스】 일본 조엄조선통신사 행렬도(부분)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역사공부 재미있게해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 수시.정시 반영비율 file sorbon 2018.04.04 3
공지 9000년 민족사 역대 왕 계보표(출처:네이버블로그) file sorbon 2017.01.31 364
공지 너 어느학원에 다녀.. (S&H소르본학원 이름의 유래) file sorbon 2015.07.06 599
» 어보어책·국채보상운동·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file sorbon 2017.10.31 47
88 통일 신라 왕실이 사용한 8세기 수세식 화장실 유적 경주서 발견 file sorbon 2017.09.26 58
87 조선왕위 계보도 file sorbon 2017.09.22 86
86 스마트폰 중독의 문제점과 해결책 file sorbon 2017.07.03 81
85 가야사 정리 file sorbon 2017.06.06 117
84 만우절 유래? sorbon 2017.03.30 88
83 [역사이야기] 조선시대에도 만우절이 있었다? file sorbon 2017.03.27 88
82 '한국어=알타이어족' 단정적 표현 사전서 바뀌었다 file sorbon 2017.02.21 103
81 정월 대보름 유래와 풍습 sorbon 2017.02.11 187
80 조선시대 왕 보다 장수한 `내시`의 삶 file sorbon 2017.02.06 141
79 "신라 '임신서기석' 연대는 612년 아닌 552년" file sorbon 2017.01.24 165
78 한국의 속담 모음 sorbon 2017.01.04 3225
77 틀린그림찾기(총-10개) file sorbon 2016.12.16 493
76 [역사속 한식]곰탕과 대갱 file sorbon 2016.11.30 247
75 일부일처제로 이끈 주인공은? file sorbon 2016.11.21 217
74 한국인의 성씨] 한국의 희귀 성씨들 sorbon 2016.11.18 448
73 외국의 성씨제도 sorbon 2016.11.18 249
72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 sorbon 2016.11.18 304
71 본관, 시조, 중시조 어떻게다른가 sorbon 2016.11.18 2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

신주소 : 구리시 벌말로 170,301호(토평동,토평프라자)
구주소 :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995번지 토평프라자 301호
전화 : 031-555-5550(代)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